스탠더드 오일 (Standard Oil Company)
바로 전에 포스팅했던 'US스틸'에서 카네기가 항상 견제하던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존 데이비슨 록펠러이다. 록펠러는 스탠더드 오일을 운영하며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하지만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회사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1911년 미연방 법원이 스텐더드 오일 사가 미국의 반독점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회사를 여러 회사로 독립시키라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스탠더드 오일은 각기 모빌오일(Mobil Oil Corporation), 콘티넨털 오일(Continental Oil Company), 아모코(Amoco Corporation), 엑슨모빌(Exxon mobil Corporation) 등으로 쪼개졌다. 하지만 스탠더드 오일은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기업 중에 하나이다. 스탠더드 오일을 설립한 존 데이비슨 록펠러는 지구 역사상 가장 많은 부를 얻은 사람으로 꼽힌다. 심지어 클레오파트라, 나폴레옹,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등 수많은 부자들을 제치고 당당히 세계 1위의 부자 자리를 차지했다. 그의 자산은 현재 빌 게이츠의 전재산의 3배에 가깝다고 하니, 록펠러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금부터 스탠더드 오일 사에 대해 알아보면서, 미국의 근대 경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뉴욕 리치퍼드에서 태어난 록펠러는 원래부터 부자는 아니었다. 그는 클리블랜드의 센트럴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휴이트 앤드 터틀'이란 회사에서 경리부 직원으로 취업했다. 그는 거기서 회계장부를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는데, 그 때의 습관이 록펠러의 성공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최고의 부자가 된 후에도 그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장부를 기입했다고 한다. 그는 이후에 친구와 함께 1895년에 상사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1863년에 부업으로 클리블랜드에 정유소를 설립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그가 부자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의 정유소는 파산 직전까지 갔었다. 당시 미국의 철도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미국의 철도수송시장을 장악했던 코넬리우스 벤더빌트는 돈의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원래 선박업으로 돈을 벌었는데,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선박수송보다는 철도수송이 더 많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가지고 있던 모든 선박을 팔아서 철도에 투자했다. 그의 전략은 100% 맞아서 그는 남북전쟁이 끝날 무렵 미국 제일의 부자가 되었다. 그는 미국 최대 단일 철도회사를 가졌는데, 그걸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사업을 구상했는데, 그것은 바로 등유 수송이었다. 등유가 막 개발되기 시작해서 조명이 발달하는 시기였다. 벤더빌트는 앞으로 등유가 더 많이 필요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래서 벤더빌트는 등유를 독점 수송할 계획을 세우는데, 그 때 마침 벤더빌트의 눈에 든 것이 바로 존 데이비슨 록펠러였다. 벤더빌트의 눈에 록펠러는 그저 평범하고 파산 직전에 내몰린 정유소 사장일 뿐이었다. 벤더빌트는 그를 이용하고자 클리블랜드에서 자신의 회사까지 올 수 있도록 기차표를 예매해주었다. 록펠러는 미국 최고의 부자가 자신과 협상을 하고자 하니 마음이 들떴다. 하지만 그는 벤더빌트가 예약해준 열차를 놓치고 만다. 그런데 그 열차가 사고가 나면서 탑승자 대부분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록펠러는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는데, 그는 이 사고를 보고 자신이 선택받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자신감을 가지게 된 록펠러는 벤더빌트를 만나러 가서 누구보다 당당한 모습으로 벤더빌트와 협상을 진행했다. 벤더빌트는 자신감 넘치는 록펠러를 믿고 그와 계약을 했다. 그런데 사실 록펠러는 벤더빌트와 계약한 만큼의 등유를 생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계약을 위반해서는 안되었기 때문에, 록펠러는 투자자들을 모아 '스탠다드 오일'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그는 투자받은 돈으로 등유 생산량을 높이고 정유시설이나 보관창고 등도 업그레이드했다. 덕분에 록펠러는 벤더빌트와의 계약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게 된다. 록펠러는 승승장구하여 미국 최대의 등유생산자가 되었다. 록펠러는 록펠러의 등유 생산량은 어느새 벤더빌트의 수송능력을 넘어서게 되었다. 이때 록펠러에게 접근한 것이 바로 철도업자인 탐 스캇과 그의 제자인 앤드류 카네기였다. 탐 스캇은 제자와 함께 클리블랜드의 스탠다드 오일 사를 방문해 록펠러를 만나 자신들과도 계약을 하자고 제안했다. 록펠러는 이에 벤더빌트와 스캇을 경쟁시켜서 등유 운송비가 줄어들게 했다. 운송비를 절약하고 등유를 판매한 돈이 넘치자, 록펠러는 그 돈으로 다른 정유사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록펠러는 결국 나이 33세 때, 미국 최고의 석유왕이 되었다. 그가 공급하던 석유 물량이 북미 석유 전체의 90%가 넘었다. 록펠러는 계속 돈을 버는데, 스캇과 벤더빌트는 운송비를 저렴하게 받으니 상대적으로 적은 돈을 벌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둘은 담합을 해서 운송비를 높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록펠러는 막대한 자금력으로 대규모 송유관을 건설해, 직접 석유를 운송하기 시작했다. 록펠러의 석유를 더이상 운송할 수 없게 되자 미국의 철도산업은 순식간에 무너지게 되었다. 철도산업이 무너지자 미국에는 엄청난 경제불황이 닥치게 되었다. 수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게 되었고, 많은 철도회사가 파산했다. 이것이 바로 1873년 일어난 미국의 대공황이었다. 록펠러는 파산한 철도회사들을 사들여 직접 석유를 운송했다. 록펠러는 대공황을 이용해 전세계의 등유물량을 생산하게 되었다. 당시 록펠러가 미국의 98%에 가까운 등유를 통제했다고 한다. 그의 당시 순자산은 현재 가치로 250조원에 달했다.
록펠러는 승승장구했다. 대공황 후에 철강으로 큰 부를 축적한 철강왕 카네기의 몇 배에 달하는 자산을 가졌을 정도였다. 록펠러는 이윤을 다른 사업에도 투자했다. 덕분에 스탠더드 오일 사의 자회사는 산림, 광산, 철도, 은행 등 분야가 매우 다양했다. 1882년에 록펠러는 스탠더드 오일의 계열사들을 모두 통합하여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를 설립했다. 하지만 1890년에 오하이오 주에서 셔먼법 위반을 이유로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를 해산시켰다. 셔먼법은 미국 최초의 독점 금지법으로, 주간 및 국제간 거래를 제한할 수 있는 생산 주체 간 어떤 형태의 연합도 불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는 독점을 방지하기 위한 미국 최초의 법이었다. 이에 록펠러는 원래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의 본사가 있던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서 뉴저지로 사업의 거점을 옮겼다. 뉴저지 스탠더드 오일은 미국 전역에 있는 스탠더드 오일 자회사의 지주회사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1911년 미국의 반트러스트법이 시행되면서,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는 법 위반으로 결국 해체되었다. 스탠더드 오일은 이후 저지 스탠더드 오일, 캘리포니아 스탠더드 오일, 뉴욕 스탠더드 오일 등의 독립회사로 쪼개졌는데, 이 회사 중, 저지 스탠더드 오일과 뉴욕 스탠더드 오일이 합병해서 엑슨모빌이 되었다. 록펠러는 성공을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냉혹한 사람이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스탠더드 오일에 해체된 후, 록펠러는 자선가로 변신했다. 스탠더드 오일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형 다국적 기업 중 하나다. 비록 해체되기는 했지만, 스탠더드 오일은 미국의 근대 경제에서 빠질 수 없는 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