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명품 중에 하나인 프라다는 이탈리아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패션기업이다. 프라다의 핸드백이 일종에 부의 상징이 되기도 했으나, 요즘은 젊은 대학생들도 생각보다 많이 들고 다닌다. 지금부터 프라다 브랜드의 역사와 프라다의 제품 등을 살펴보면서, 프라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프라다(PRADA)는 1913년 마리오 프라다와 마르티노 프라다 형제가 이탈리아 밀라노 갤러리아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아케이드에 오픈한 '프라텔리 프라다(이탈리아어로 '프라다 형제'라는 뜻)'라는 가게가 시초이다. 프라텔리 프라다는 가죽제품 전문매장이었는데, 가죽제품 외에도 영국에서 수입한 핸드백이나 트렁크가방도 같이 판매했다. 프라텔리 프라다의 제품은 이탈리아 사보이 왕실에서도 인정받아, 왕실 공식 납품 업체로 지정되기도 했다. 마리오 프라다는 패션디자이너였는데, 그는 여행을 좋아해서 유럽과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견문을 쌓았다. 그의 안목으로 선택된 제품들은 유럽 왕가와 상류층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프라다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유럽경제가 침체되면서, 프라다 또한 위기를 맞게 된다. 마리오 프라다는 여자는 사업을 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들이었던 알베르토 프라다에게 가업을 물려주려고 했다. 하지만 알베르토는 가업에 관심이 없었고, 결국 마리오 프라다가 1958년에 사망한 후, 그의 딸인 루이자 프라다가 가업을 잇게 되었다.


현재의 프라다가 있게 만든 것은 루이자 프라다의 딸이자, 마리오 프라다의 손녀인 미우치아 프라다였다. 그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위기를 맞은 프라다를 혁신적으로 바꿔놓았다. 1977년에 프라다의 회장직을 맡은 미우치아 프라다는 패션디자인을 전혀 배운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 덕분에 그녀는 독특한 방식으로 프라다의 디자인팀을 이끌었다. 먼저 그녀는 자신이 생각한 디자인을 디자인팀에 전달하고, 소재와 재단법을 디자인팀과 같이 상의하며 찾았다. 미우치아 프라다가 프라다 회장이 된 지 1년 뒤, 가죽 사업을 하던 파트리치오 베르텔리가 프라다와 동업을 시작했다. 원래 그 전 까지 프라다는 핸드백이나 트렁크 등의 가죽제품을 외국시장에서 완제품으로 수입해서 판매하고 있었다. 파트리치오 베르텔리는 미우치아에게 더 이상 수입에 의존하지 말고, 독자적인 스타일의 가죽제품을 개발하라고 조언을 했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이를 받아들여 새로운 가죽라인을 개발했고, 이것이 현재 프라다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파트리치오 베르텔리와 미우치아 프라다는 결혼을 해서, 파트리치오가 경영을 맡고 미우치아는 프라다의 디자인을 전담하는 2인체제로 운영하게 된다.


프라다의 새로운 시작은 바로 포코노 나일론을 이용한 가방이었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1979년에 방수천의 일종인 포코노 나일론을 이용해서 심플한 디자인의 가방을 만들었다. 원래 군용물품의 낙하산이나 텐트 등을 만들 때 사용되던 포코노 나일론을 가방에 접목시킨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특히나 그 당시 대부분의 가방들은 가죽소재를 이용해서 제작되었는데,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은 미우치아 프라다의 독특한 디자인 덕분에 새로운 제품이 탄생한 것이다. 검정색 포코노 나일론을 이용한 백팩과 토트백 세트가 1979년에 처음 출시되었다. 이 제품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실용적인 소재에 심플한 디자인으로 정장과 캐쥬얼에 두루 어울렸던 이 가방은 전 세계 유명 부티크와 백화점에서 없어서 못 파는 제품이 되었다. 덕분에 부도 위기였던 프라다는 위기를 벗어나게 되었다. 이후 프라다는 이 소재를 이용해 '프라다 클래식 핸드백'을 출시했다. 실용성과 디자인을 모두 충족한 이 제품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단번에 프라다를 명품 브랜드 반열에 올려놓았다. 프라다는 기존 밀라노에만 있던 매장을 이탈리아 피렌체, 프랑스 파리, 스페인 마드리드, 미국 뉴욕으로 확대했다. 또한 가방을 주로 판매하던 프라다에서 신발 라인을 새로 선보였다. 그 후, 1987년에는 여성용 기성복 컬렉션을 출시했는데, 길게 늘어뜨린 허리선과 가는 벨트, 우아한 스타일의 원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후 이러한 특징은 프라다 제품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프라다 브랜드의 성공에 이어, 미우치아 프라다는 1993년에 세컨브랜드인 '미우미우(Miu Miu)'를 출시했다. 이후에는 젊은 남성들을 위한 '프라다 워모(Prada Uomo)'를 출시했고, 뒤이어 언더웨어 브랜드인 '프라다 인티모(Prada Intimo)'와 스포츠 브랜드 "프라다 스포츠(Prada Sports)'를 연이어 출시했다. 특히 프라다 스포츠의 프라다 스니커즈는 큰 호평을 받았다. 프라다는 90년대에 들어서 특히 일본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전 세계 40여 개의 매장 가운데 20개가 일본에서 운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과 미국의 명품소비가 줄어들자 프라다는 타격을 받았다. 그래서 프라다를 운영하고 있던 파트리치오 베르텔리는 프라다의 지분의 약 25%를 펜디(Fendi)와 LVMH그룹에 매각했다. 다행히 2003년에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소설로 출간되면서 큰 인기를 끌고, 2006년에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덕분에 '프라다'라는 브랜드 이름이 전세계 사람들에게 각인되는 효과를 누렸다. 2007년에 한국 LG전자와 협업해서 '프라다폰'을 출시하기도 했다. 프라다폰은 큰 인기를 얻어, 출시 다음 해에 '프라다폰2'가 출시되기도 했다.


우리가 알고있는 '사피아노 가죽'소재를 만든 사람이 바로 프라다의 창립자인 마리오 프라다이다. 그는 소가죽의 부드러운 부분을 빗살무늬나 철망무늬를 넣고 다시 광택을 냈다. 그가 만든 사피아노 가죽은 내구성이 뛰어나고 오염에 강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많이 쓰이는 가죽 소재이다. 이 소재를 활용한 프라다의 '사피아노 럭스백'은 프라다의 대표상품이다. 그 외에도 포코노 나일론을 이용한 백팩은 실용성과 디자인이 모두 어우러져 아직까지 큰 사랑을 받고있다. 그 외에 프라다의 대표 상품에는 '나파 고프레 백'이 있다. 나파 소재는 통가죽의 천연 결은 살리고 실크처럼 부드럽게 가공한 소재이다. 마리오 프라다는 이 소재를 가방이 이용했는데, 스페인 양가죽을 나파 가공법으로 실크처럼 만든 후 그 위에 광택을 입혔다. 이렇게 만든 소재로 주름장식을 만들어 만든 것이 바로 '고프레 백'이다. 나파 고프레 백을 마돈나가 들고 다니면서 '마돈나 백'으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여러 할리우드 스타들이 나파 고프레 백을 애용했고, 덕분에 이 백은 스테디 셀러가 되었다.


프라다는 가방, 의류, 신발 외에도 지갑, 화장품, 향수, 보석, 시계 등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약 80개국에 4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본사는 아직까지 이탈리아 밀라노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2인 경영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미우치아 프라다가 디자인을, 남편인 파트리치오 베르텔리가 기업 경영을 맡고 있다. 2011년에는 홍콩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하기도 했다. 프라다는 2002년부터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 꾸준히 선정되고 있다. 프라다의 로고에는 과거 이탈리아 사보이 왕실에 인정받았다는 증명으로 왕가의 문장과 매듭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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