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카티는 이탈리아 볼로냐에 본사를 두고 있는 고성능 모터사이클 제조 회사이다. 원래 두카티는 개별 회사였지만, 2012년 폭스바겐 그룹 산하의 아우디와 합병되면서 폭스바겐 그룹의 자회사가 되었다. 그동안 자동차에 대해서 알아봤다면, 이번에는 모터사이클 계의 페라리로 불리는 두카티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두카티는 창업자 안토니오 두카티의 이름에서 브랜드명을 따왔다. 두카티 회사는 처음부터 모터사이클을 만들지는 않았다. 1922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미국까지 송수신이 가능한 단파 무선 라디오 장치를 안토니오 두카티의 아들인 아드리아노 두카티가 개발했다. 그는 이 기술에 특허를 받았고, 투자자들의 투자를 받아 아버지인 안토니오 두카티와 두 형제(마르첼로 두카티, 브루노 두카티)와 함께 회사를 설립했다. 그 당시 두카티의 정식 명칭은 '특허받은 두카티의 라디오 기술 회사'라는 뜻을 가진 소시에타 사이언티피카 라디오 브레베티 두카티였다. 두카티는 창업 이후, 각종 라디오 부품을 개발해 주목을 받았다. 두카티는 이에 그치지 않고 카메라, 렌즈, 현금수납기, 정밀기계까지 사업을 확장시켰다. 덕분에 1930년대에 두카티는 볼로냐에서 가장 큰 제조사가 되었다. 두카티는 이러한 성공을 발판으로 파리, 런던, 뉴욕, 시드니에 사무소를 설립해 두카티의 기술력을 세계적으로 알렸다. 어느덧 전자기기 전문 제조회사로 성장한 두카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크게 휘청이게 된다. 1945년,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 까지 두카티는 공장이 폭격을 맞아 무너지는 등의 위기로 모든 전자기기 생산이 중단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나자 두카티는 부분적으로 공장을 가동시켰다. 마침 전쟁으로 인해 이탈리아 대부분의 철도와 도로가 파괴되었고, 이에 이탈리아 국민들은 저렴하면서도 편리한 개인 교통수단을 원하고 있었다. 두카티는 이런 흐름에 맞춰 자전거에 장착할 수 있는 소형 엔진을 개발했다. 이것이 바로 모터사이클의 시작이었다.
1946년, 두카티는 소형엔진을 장착한 자전거를 첫 출시했다. 사람의 힘으로만 움직이는 일반 자전거와 달리 힘도 덜 들고 속도도 더 빨랐던 자전거 쿠치올로는 전세계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이를 계기로 두카티는 모터사이클 부문과 전자기기 제조 부문으로 사업을 나누어 운영했다. 그 중 모터사이클 부문을 담당했던 것이 '두카티 메카니카'였고, 이것이 현재 두카티 브랜드의 시작이었다. 두카티 일가는 자전거 쿠치올로의 성공으로 전쟁에서 얻었던 여러 적자를 메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워낙 그 규모가 커서 두카티 일가는 결국 1948년, 회사를 이탈리아 정부에 양도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두카티회사를 양도받은 뒤, 1950년대 초반까지 쿠치올로를 생산했다. 쿠치올로가 큰 성과를 보이자 이탈리아 정부는 두카티를 본격적으로 모터사이클 분야에 진출시키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이탈리아에는 '모토 구치'와 '질레라'라는 모터사이클 업체가 있었다. 이 두 업체는 모터사이클 레이싱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있었다. 이 두 브랜드처럼 모터사이클 레이싱 대회에 나가는 것이 두카티를 알리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 이탈리아 정부는 모터사이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던 엔진 디자이너 파비오 타글리오니를 영입했다. 1954년부터 두카티의 수석 디자이너를 맡은 파비오 타글리오니는 '데스모드로믹 밸브'라는 엔진을 만들어냈다. 이 엔진은 지금까지도 두카티 모터사이클에 사용되고 있을 정도이다. 이 엔진을 장착한 모터사이클이 각종 레이스에서 우승을 했고, 대중들은 두카티 브랜드를 '승리'의 이미지로 기억하게 되었다. 두카티는 이후 데스모드로믹 밸브 엔진을 경주용이 아닌 일반 모터사이클에 장착해 출시했고, 이 제품은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덕분에 이탈리아의 작은 모터사이클 제조업체였던 두카티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두카티는 각종 레이스에서 계속 우승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선두는 일본 브랜드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두카티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1971년에 기존의 단기통 엔진 대신 높은 배기량의 엔진을 개발했다. 영국의 전설적인 레이서였던 폴 스마트가 두카티의 트윈 엔진이 장착된 제품을 몰고 수많은 대회에서 우승했다. 덕분에 두카티는 크게 성장했다. 두카티는 계속해서 더 높은 배기량과 출력을 지닌 모델들을 잇따라 출시했고, 이 제품들은 모두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인기에도 불구하고 연구개발에 너무 많은 투자를 했던 두카티는 적자를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1985년, 두카티는 카지바 그룹에 인수되었다. 카지바 그룹은 두카티 기술의 대부분을 전수받고 더욱 뛰어난 기술 연구에도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 덕분에 두카티는 좋은 평가를 받는 제품들을 잇따라 출시했고, 레이스에서도 좋은 성적을 얻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카지바 그룹의 경영 실책으로 인해 두카티는 또다시 경영난에 빠지게 되었다. 당시 미국의 할리 데이비슨과 독일의 BMW, 영국의 트라이엄프, 일본의 혼다, 가와사키 등으로 모터사이클 시장은 포화상태였고, 이들과의 경쟁에서 두카티는 밀려났다.
결국 두카티는 1996년, 미국의 텍사스 퍼시픽 그룹으로 인수되었다. 텍사스 퍼시픽 그룹은 두카티에 전문 경영인 페데리코 미놀리를 투입시켰다. 그는 두카티가 뛰어난 성능으로 인해 많은 잠재고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활용을 하지 못했던 점을 파악했다. 그는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이 활발히 사용되기 시작하는 점을 이용해 온라인에 두카티닷컴이라는 사이트를 개설했다. 이 사이트를 통해 두카티와 고객, 슈퍼바이크의 팬들은 서로 소통이 가능해졌고, 두카티에 대한 고객들의 충성도는 더욱 높아졌다. 이 해에 두카티는 온라인 판매 전용모델인 MH900e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출시하고 10일동안 2,000대의 주문이 쏟아질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다. 제품을 직접 보지도 못하고 단지 온라인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은 두카티 브랜드에 대한 믿음으로 제품을 구매했다. 두카티는 그 후 매출이 급상승했고, 시장 점유율도 2배 이상 커졌다. 그 후 2012년에 두카티는 폭스바겐 그룹 산하의 아우디 AG의 자회사로 인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