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자동차 회사 BMW나 제너럴모터스, 볼보, 벤츠, 아우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일본 회사가 바로 도요타 자동차이다. 도요타는 생산 및 판매대수로만 보자면 세계 1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자동차 회사를 넘어 세계에서 우뚝 선 도요타 자동차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도요타자동차는 1937년에 설립되었다. 도요타라는 이름은 설립자인 일본의 발명왕 도요타 사키치의 아들, '도요타 키이치로'의 성을 땄다. 원래 도요타 자동차는 도요타 사키치가 설립한 도요타자동방직기제작소 내에 있었던 자동차부서였다. 그 후, 1937년에 자동차 제조회사로 독립한 것이 현재의 도요타 자동차이다. 도요타 자동차 공업 주식회사로 독립한 후, 도요타는 승용차 'AA'를 출시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주로 트럭을 생산했다. 1941년에 발발한 태평양전쟁으로 인해 군용트럭의 수요가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도요타 자동차의 성장세가 멈춘 것은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하면서 부터였다. 도요타는 실적이 부진하자 생산인원감축을 고려하게 되었고, 이는 곧 노사갈등의 시작이 되었다. 노동자들은 도요타 자동차를 위기에 빠트린 사장 도요타 키이치로의 해임을 요구하는 총파업을 진행했다. 결국 도요타 키이치로는 사장에서 물러나고, 도요타 자동차는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되면서 도요타는 다시 한 번 기회를 얻게 된다. 미군이 도요타에 군용트럭 1천대를 주문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 도요타 자동차는 1955년 승용차 크라운과 1957년 승용차 코로나를 출시했다. 특히 크라운은 1957년에 미국으로 수출되어 500만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도요타는 1959년에 승용차 전문 공장을 설립해 대량생산체제에 돌입하게 되었다. 도요타는 그 후 1966년 소형차모델인 콜로라를 출시했다. 크라운, 코로나, 콜로라는 도요타의 대표브랜드가 되었다. 덕분에 도요타는 닛산을 누르고 일본 제일의 자동차 메이커로 성장하게 되었다. 1973년 오일쇼크 사태가 발생하면서 소형차인 콜로라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덕분에 콜로라는 출시 이후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 세계에서 3,500만 대 이상이 팔리는 인기 모델이 되었다. 콜로라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세단이기도 하다. 도요타는 북미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해 1988년에 미국에 5개의 자동차 공장을 준공했다. 그리고 다음 해에 '렉서스(Lexus)'라는 브랜드를 선보이고 고급 승용차를 출시했다. 렉서스 브랜드의 자동차는 벤츠와 BMW의 판매량을 넘어서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이 결과는 도요타가 실용성을 중시한 차량 외에도 고급형 차량 등 전 차종에서의 강자가 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덕분에 2008년에 들어서 도요타 자동차는 매출액과 생산량에서 자동차 부문 세계 1위로 발돋움한다. 자동차 부문이 아니더라도 도요타 자동차는 세계 12위의 매출액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되었다. 도요타 자동차는 렉서스의 급발진 문제때문에 2009년 미국에서 대규모 리콜 사태를 맞이하기도 했지만, 11년동안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고급차 브랜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은 도요타 자동차가 연간 천만대가 넘는 차를 생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도요타가 현재 판매하고 있는 차종으로는 캠리, 캠리 하이브리드, 프리우스, 시에나, 벤자, 도요타 86, 아발론, FJ 크루저, 렉서스 등이 있다. 도요타의 대표 모델이었던 콜로라는 2014년에 판매를 중단했다. 현재 도요타 자동차의 본사는 일본 아이치 현 중북부에 있는 도요타 시에 있다. 원래 시의 이름이 고로모 시였으나, 도요타 자동차가 고로모 시에 모토마치 공장을 세우면서 이름을 도요타 시로 변경했다. 그 뿐 아니라 도요타가 본사를 이곳으로 옮기면서 본사 소재지 또한 '도요타시 도요타쵸 1번지'가 되었다. 도요타 자동차는 일본 내에만 30개가 넘는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 뿐 아니라 북미, 태국, 말레이시아, 브라질 등 세계 각지에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도요타는 자동차 제조 뿐만 아니라, 주택, 금융, 정보통신 쪽으로도 진출하고 있다.

볼보는 스웨덴의 자동차 브랜드이다. 1926년 스웨덴의 어느 레스토랑에서 경제학자 겸 볼베어링 회사 직원이었던 아서 가브리엘손과 볼베어링회사 엔지니어였던 구스타프 라르손이 냅킨의 뒷면에 자동차를 디자인하고 구상하면서 볼보를 탄생시켰다. 볼보는 스웨덴 최초의 현대식 자동차 공장을 세웠고 그 후 스웨덴의 국민차를 만들어냈다. 볼보는 무엇보다 '안전'을 중요시하는 회사로, 인간 중심의 디자인을 구상해 자동차 안전 기술의 표본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볼보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볼보는 1927년에 설립된 회사이다. 당시 최대 볼베어링 회사였던 SKF의 직원 두 명이 SKF의 투자를 받아 세운 회사였다. 그 두 직원은 아서 가브리엘손과 구스타프 라르손이었는데, 그들은 그 당시 스웨덴에서 인기를 얻었던 미국 자동차들이 스칸디나비아의 기후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북유럽의 춥고 거친 날씨를 견딜 수 있는 자동차를 제작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둘은 1924년에 처음으로 자동차 구상에 들어갔다. 그들은 마침내 1926년 자동차의 뼈대를 제작했다. 하지만 투자금이 부족했던 아서와 구스타프는 테스트카를 먼저 제작하기로 한다. 그들이 처음 제작했던 OV4는 SKF의 경영진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그들은 아서와 구스타프의 프로젝트에 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아서와 구스타프는 SKF의 자금을 바탕으로 스웨덴 예테보리에 스웨덴 최최의 현대식 자동차 공장을 세웠다. 그리고 그들은 '나는 구른다'는 의미의 "볼보"라는 회사를 설립한다. 볼보는 첫 번째 자동차인 야곱을 생산하면서 SKF에 대한 감사의 의미를 담아 엠블렘을 제작했다. 회전하는 베어링을 형상화한 이 엠블렘은 화살표 문양이 달린 동그라미 모양이었고, 현재까지 볼보는 이 엠블렘을 사용하고 있다. 볼보는 그 무엇보다 '안전'을 중시했다. 스웨덴은 미국이나 다른 유럽지역에 비해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계절적 단점과 낮은 도로포장률 때문에 도로사정이 좋지 않았다. 이에 볼보는 안전성을 중시한 고가의 자동차 '야곱'을 첫 생산했지만, 워낙 고가다 보니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1928년, 볼보는 첫 6기통 모델인 PV651을 출시했다. 이 모델은 기존의 야곱보다 엔진출력이 강화되어 호평을 받았다. 볼보는 또한 트럭 제품군을 새로 출시해 사업 영역을 확대했는데, 이것이 인기를 끌면서 1929년, 처음 흑자로 전환하였다. 1939년,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볼보 또한 다른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전시용 차량을 제조하게 되었다. 하지만 볼보는 전쟁 후를 대비해 소형차 개발을 남몰래 준비했다. 덕분에 1944년에 출시된 볼보의 소형차 모델 PV444는 큰 인기를 누렸다. 볼보는 세계 최초로 강화유리를 자동차에 접목시켜 안전성을 더욱 높였고, 이는 전쟁 동안 '안전'을 중요시하게 된 스웨덴 국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었다. 이 결과, PV444는 스웨덴 국민차로 등극하게 되었다. 1946년에 볼보는 새롭게 농업용 트랙터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 후 볼보는 건설 기계 제조 업체였던 볼린더 뭉크텔을 인수하고 본격적으로 건설기계 제조분야로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볼보는 1955년에 미국시장에 진출했다. 1956년에 출시된 볼보의 '볼보 아마존'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끌었는데, 특히나 '고장 없는 차'로 유명했다. 볼보는 1959년 세계 최초로 3점식 안전벨트를 자동차에 기본사양으로 장착하는데, 이는 볼보가 '안전한 자동차'를 만든다는 브랜드 이미지를 더욱 확고하게 했다. 1960년, 볼보도 드디어 스포츠카를 제작했는데 바로 P1800이었다. P1800은 고풍적이면서도 스포티한 디자인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후에도 볼보는 안전을 강조하는 차량을 지속적으로 개발했다. 볼보 144나 볼보 164 등은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볼보의 이미지를 '안전한 차'로 공식화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 볼보는 페어 길렌하마르를 새로운 CEO로 맞이했다. 볼보 자동차들이 대부분 안전성을 강조한 중대형 차량이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볼보의 소형차 생산을 요구했다. 페어 길렌하마르는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춰 소형차 제작 전문이었던 네덜란드의 DAF를 1972년에 인수했다. 볼보의 안전한 차량은 미국의 교통안전공사가 벤치마킹할 정도였고, 덕분에 1976년 볼보는 '안전'에 있어서 최고의 브랜드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1979년 볼보는 프랑스의 르노자동차의 출자를 받아 승용차 부문을 독립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1981년 이후 볼보는 유럽 자동차 브랜드 중, 미국에 가장 많이 수출하는 브랜드로 발돋움했다. 볼보는 지주회사체제를 1982년에 시작했다. 회사 이름을 볼보 그룹으로 변경하고 그 아래 자회사로 볼보자동차, 볼보트럭, 볼보버스, 볼보펜타 등을 두었다. 볼보의 성공은 계속되었다. 1990년대에 볼보는 혁신적인 새로운 모델을 제작했다. 1991년 출시된 볼보 850은 전륜구동 방식으로 기존의 후륜구동의 차량들과 차별화를 두었다. 또한 5기통 엔진을 장착했기 때문에, 기존의 6기통 차량보다 작으면서 연비가 좋았다. 덕분에 볼보 850은 큰 인기를 끌었다. 볼보는 그 후 소형차 라인의 생산에도 무게를 두었다. 1995년에는 S40과 V40을 출시했는데, S는 세단을 의미하고 V는 다용성을 의미한다. 작은 소형차를 개발했음에도 소비자들에게 볼보는 딱딱하고 커다란 자동차의 이미지가 강했다. 이에 1998년 볼보는 대형세단 S80을 출시했다. S80은 그동안의 볼보 차량과는 달리 유선형 디자인과 다양한 컬러를 채택해 기존의 딱딱했던 볼보의 자동차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1999년 포드사가 볼보의 승용차부문을 인수했고, 볼보 승용차(Volvo Car Corp.)는 볼보그룹의 '볼보'라는 이름을 공유하지만 소유주가 다른 회사가 되었다. 이러한 바탕에는 당시 볼보 그룹의 회장이었던 레이프 요한손의 결정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 대형 승용차 시장에서 10개 정도의 회사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따라서 당시 세계 23위였던 볼보 자동차는 1순위 매각대상이었다. 포드 사와 볼보 사는 볼보 트레이트마크 홀딩 AB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브랜드 네임과 관련된 문제들을 관리하기로 했다. 볼보 그룹은 볼보 자동차를 매각한 이후, 미국의 맥 트럭과 르노 트럭을 인수했다. 이를 통해 볼보는 세계 2위이자 유럽 최대의 트럭 회사가 되었다. 또한 삼성중공업의 건설기계분야와 닛산 디젤, 중국의 링공까지 인수하면서 트럭과 건설중장비 부분에서 세계 최고의 회사로 성장하게 되었다. 한편, 포드 사가 인수한 볼보 자동차는 2000년에 스포티한 컨셉의 중형 세단 S60을 선보였다. 볼보 자동차는 자신들의 '안전'이미지를 버리지 않고, 계속 안전장치를 개발했다. 

2004년, 볼보 자동차는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BLIS 기술을 개발했다. BLIS 기술은 사각지대에 다른 차량이 감지될 경우, 알람 램프에 불이 들어오면서 다른 차량의 존재를 알려주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유럽의 여성 운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볼보 자동차는 그 이후로도 꾸준히 첨단 안전 시스템을 개발했다. 하지만 2007년부터 경기 불황이 심화되면서 포드 사는 볼보자동차를 중국 회사인 질리에 매각했다. 이후에도 볼보는 꾸준히 인간 중심의 디자인 철학을 통한 자동차를 개발했다. 보행자 에어백이나 자전거 감지 시스템 등 다양한 안전 관련 기술들을 개발한 볼보자동차는 수많은 자동차 브랜드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안전'전문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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