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국에서 테슬라의 전기자동차가 출시된다는 소식이 나왔다. 환경친화적이며 저렴한 연료인 전기차를 전문으로 출시하는 테슬라가 한국에 첫 출시를 앞두고 있다는 소식은 많은 사람들을 열광하게 했다. 그리고 2017년 3월 15일인 어제, 드디어 테슬라가 한국에 매장을 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있던 전기차와 달리, 테슬라의 전기차는 획기적인 디자인과 개선된 주행성능 등을 갖추고 있다. 덕분에 전기차의 대표적인 업체가 된 테슬라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테슬라는 2003년에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설립되었다. 테슬라의 설립자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 사실 엔지니어였던 마틴 에버하드(Martin Eberhard)와 마크 타페닝(Marc Tarpenning)이 테슬라를 설립했는데, 그 이후 인터넷 결제서비스인 페이팔의 최고경영자였던 엘론 머스크(Elon Musk)가 초기투자자로 참여했다. 엘론 머스크는 막강한 자금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테슬라의 최대주주로 등극했고, 나중에 테슬라의 창립자와 관련해서 분쟁이 발생한다. 결국 마틴 에버하드와 마크 타페닝은 테슬라를 떠나게 되고, 창립자 지위 또한 엘론 머스크가 가져가게 된다. 엘론 머스크는 현재에도 테슬라의 CEO를 맡고 있다. 테슬라라는 이름은 미국의 전기공학자였던 니콜라 테슬라의 이름을 딴 것이다. 니콜라 테슬라는 전기 분야에서만큼은 에디슨보다 더 창의적인 발명가였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그는 현대 교류 전기의 근간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니콜라 테슬라는 1904년에 스마트폰과 같은 휴대용 수신기를 예견하기도 했다. 이러한 천재발명가인 니콜라 테슬라의 이름을 따서 회사명을 결정한 이유는 바로 그가 특허를 낸 'AC 인덕션 모터' 때문이었다. 테슬라에서는 'AC 인덕션 모터'를 이용해 스포츠카를 만들기로 결심했고, 이에 테슬라의 이름을 따서 회사를 만들게 되었다. 현재 테슬라의 대표 상품인 전기차 테슬라 로드스터(Tesla Roadster)가 바로 니콜라 테슬라의 AC 인덕션 모터(AC Induction Motor)를 사용하고 있다. 

테슬라 로드스터는 2006년에 개발된 전기 스포츠카이다. 이 제품의 출시 및 대량샌산은 2008년 이후에 시작했다. 테슬라는 전기자동차는 작고 못생겼다는 편견을 깼다. 로드스터는 288마력까지 낼 수 있는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를 장착했고, 스포츠카치고는 작은 사이즈이지만 날렵한 몸체를 가지고 있다. 가격이 10만달러를 호가하는 제품이었는데, 2012년까지 생산되고 이후 생산이 중단되었다. 로드스터가 가지고 있던 배터리는 그 당시 다른 전기차들보다 약 두 배의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 이후 테슬라는 테슬라 모델 S, X, D, 3등을 연이어 출시했다. 2008년 공개된 테슬라 모델 S는 세단형 전기차로, 충전이 빠른 것이 장점이다. 한국에서 작년 봄에 사전예약으로 인기를 끈 테슬라 모델 3은 4도어 컴팩트 세단 전기차이다.그 밖에도 다기능 스포츠 유틸리티(SUV) 전기차인 테슬라 모델 X 등, 테슬라의 전기차는 전기차시장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테슬라는 2010년부터 유럽시장에 진출했다. 또한 같은 해에 나스닥에 공개 상장되었다. 이후에는 일본, 홍콩 등에 쇼룸을 설치하며 아시아 시장으로도 진출했다. 

전기차는 충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는데, 테슬라의 '슈퍼차저'는 이 단점을 개선했다. 슈퍼차저는 테슬라에서 무료로 전기를 급속 충전할 수 있도록 만든 충전소이다. 테슬라의 두번째 출시모델이었던 테슬라 모델 S부터 대폭 개선된 사항들이 나타났다. 먼저, 주행거리가 1회 충전만으로도 400km에 달했다. 또한 슈퍼차저를 이용하면 20분만에 모델 S의 배터리를 50%까지, 40분이면 80%까지 충전할 수 있기 때문에, 테슬라는 배터리 효율때문에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던 소비자들을 끌어모으는데 성공했다. 현재 슈퍼차저 충전소는 북미권, 유럽 및 아시아 전역에 600개 이상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이 충전소 안에 설치되어 있는 충전기는 전세계 기준으로 3,600개가 있다. 테슬라는 2017년도에는 슈퍼차저 충전기를 720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최근 테슬라는 이러한 슈퍼차저 특허를 개방했다. 전기차 생산 회사들이 모두 슈퍼차저 충전소를 쉽게 만들어서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하려는 계획이다. 테슬라는 이 외에도 모든 슈퍼차저 충전소에 차량 배터리 교체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배터리 수명이 다한 차량에 새로운 배터리를 장착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슈퍼차저 외에도 테슬라는 여러 장점이 있다. 특히 SUV 전기차인 테슬라 모델 X는 기존 SUV차량들과 비교해도 성능면에서 손색이 없다. 또한 디자인적으로도 테슬라의 차량들은 일반 차량들을 능가한다. 테슬라의 팰컨 윙은 날개처럼 차의 문이 위로 열리기 때문에 디자인적으로 매우 세련되어 보인다. 덕분에 모델 X의 가격이 1억 5천만원에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예약 주문 때 큰 호응을 얻었다. 테슬라의 차량은 소프트웨어에서도 특별함이 나타난다. 테슬라 모델 S에 장착되어있는 17인치 터치스크린이 그 예이다. 터치스크린을 이용해서 사용자는 멀티미디어, 내비게이션 등을 조작할 수 있고, 자동차의 주요 장치도 조작할 수 있다. 일종의 스마트폰처럼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편리하다. 또한 테슬라의 자동차에는 SIM카드가 내장되어 있어서, 무선인터넷도 사용이 가능하다. 첨단사회인 현재에 이러한 테슬라 차량의 기능들은 굉장히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는 2017년 3월 15일에 첫 매장을 오픈했다. 하남 스타필드에 자리잡은 테슬라 한국 1호 매장에는 오픈 첫 날 부터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테슬라 한국 1호 고객인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테슬라 매장 오픈행사에 참석해서 SUV차량인 모델 X를 사전예약했다. 한국 2호 매장은 청담에 2017년 3월 17일에 들어선다.

리복(Reebok)은 나이키, 아디다스 등과 같은 타 브랜드와는 달리 전 육상선수가 만든 스포츠 브랜드이다. 영국을 넘어 유럽 전역, 미국에서까지 사랑받은 리복은 2006년에 아디다스에 인수되었다. 리복의 모기업이 아디다스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현재 리복은 미국 회사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에 리복이 처음 시작된 곳이 영국인 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지금부터 이러한 리복에 대해 샅샅이 파헤쳐보기로 한다.



리복은 1895년 영국 런던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리복의 창시자는 조셉 윌리엄 포스터로, 그는 영국의 장거리 육상선수였다. 조셉의 할아버지인 사무엘 포스터는 영국 노팅햄샤이어에서 작은 신발가게를 운영했는데, 조셉은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조셉이 처음 개발한 운동화는 스파이크 러닝화였다. 사무엘 포스터가 개발한 스파이크가 달린 크리켓화를 본 조셉 윌리엄 포스터는 스파이크를 러닝화에 접목시키면 좀 더 접지력이 좋은 운동화가 탄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할아버지의 크리켓화를 경량화시켜 새로운 러닝화인 '포스터 러닝 펌프'를 만들어냈고, 이 운동화는 육상선수들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실제로 이 운동화는 그 당시에 있었던 다른 러닝화보다 접지력이 훨씬 우수했다. 포스터 러닝 펌프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나자 조셉 포스터는 1895년 'J.W.포스터 앤 선스'라는 러닝화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J.W.포스터 앤 선스는 러닝화 외에 다른 운동화에도 스파이크 기술을 접목시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1901년에 조셉 포스터는 발 사이즈를 측정할 수 있는 도표를 개발하여 선수들에게 맞춤형 운동화를 제작해주었다. 이러한 J.W.포스터 앤 선스의 운동화는 운동선수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그 당시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사용하는 신발로 자리를 잡게 된다. 여러 선수들 중 특히 J.W.포스터 앤 선스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건 바로 해롤드 아브라함과 에릭 린델이었다. 영화 '불의 전차'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한 두 선수는 스파이크 운동화를 신고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덕분에 J.W.포스터 앤 선스는 유럽시장에서 유명한 브랜드로 성장하게 된다. 

J.W.포스터 앤 선스는 그 후 1958년, 회사이름을 리복으로 변경한다. 리복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빠른 동물로 알려진 영양류의 이름을 땄으며, 가장 빠른 운동화를 생산한다는 이미지를 위한 시도였다. 리복은 1979년, 시카고 국제 박람회에서 북미 계약권을 판매함으로써 본격적인 미국 진출에 나섰다. 이 때, 리복의 북미계약권을 따낸 폴 파이어먼은 현재 리복의 본사가 있는 메사추세츠 주에 리복-USA를 만들었다. 리복이 미국에 진출했던 시기에 미국에서는 조깅 붐이 일어났다. 따라서 조깅화 또한 대유행이었으며, 이 때 출시된 리복의 러닝화는 타 브랜드보다 비싼 금액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렸다. 그 이유는 리복의 '러닝화 전문 브랜드'라는 이미지 덕분이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에 리복은 여성 전용 에어로빅화 제작에 집중한다. 미국 영화배우였던 제인 폰다가 에어로빅이라는 새로운 운동을 소개하자, 미국에서는 에어로빅 붐이 일어났다. 에어로빅의 특성 상, 무거운 운동화보다는 가벼운 운동화가 필요했고 리복은 이에 부합하는 운동화를 만들었다. 나이키나 아디다스 등 리복의 경쟁사들은 그 당시 여성들의 니즈를 무시했던 반면, 리복은 그에 대응하면서 큰 성과를 얻게 되었다. 덕분에 리복은 기존의 '러닝화'이미지를 탈피하고 여성용 운동화의 선두주자가 된다. 1987년, 마침내 리복은 나이키와 아디다스를 누르고 최고 매출을 달성해, 최정상급 브랜드로 성장했다. 

리복의 이러한 미국시장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리복-USA의 폴 파이어먼은 1984년에 영국 본사를 인수했다. 그 다음해 폴 파이어먼은 리복-USA의 이름을 리복-인터내셔널로 변경하고 뉴욕증권시장에 상장한다. 리복의 성장세는 멈추지 않았고, 1986년에는 더 락포트 컴퍼니를 인수해 사업영역을 더욱 확대했다. 1989년, 리복은 '스텝 리복'이라는 운동 프로그램을 개발해 미국 전역에서 시행했다. 이에 맞춰 리복은 운동화의 공기주입 방식인 펌프 기술을 개발했고, 펌프 기술이 적용된 에어로빅 운동화 등의 다양한 제품군이 출시되었다. 이 제품들이 큰 사랑을 받으면서 리복의 정상급 브랜드 이미지는 계속되었다. 리복은 이 흐름을 이어서 170여 국가에 다양한 제품들을 출시했고, 리복의 인기는 9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리복은 90년대에 들어서 영역 확대를 위해 새로운 제품군을 출시했다. 미식축구, 야구, 축구 등의 새로운 제품군은 리복의 인기를 더욱 높였다. 특히 NBA 스타였던 샤킬 오닐과 함께 출시한 '샤크 컬렉션'이 큰 사랑을 받았다. 리복은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90년대 후반에는 더욱 많은 스포츠스타와의 협업을 시도했다. 

2000년대에는 지금도 유행 중인 '코어단련운동'의 일종인 '리복 코어 트레이닝'프로그램을 시행했다. 또한 캐쥬얼시장으로도 영역을 확대해, 제이지나 50센트와 같은 힙합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했다. 하지만 90년대부터 에어로빅 붐이 사그라들면서 리복 또한 하락세를 걷게 되었다. 특히 경쟁사인 나이키의 선전으로 리복의 점유율은 크게 떨어졌고, 이에 반등을 노리기 위해 스타 마케팅을 과도하게 시도했던 리복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리복은 2006년 아디다스에 인수되면서 다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리복은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을 발굴하고 여성 소비자층의 외면하지 않았다는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한 회사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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