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보르기니(Lamborghini)'는 이탈리아의 유명 스포츠카 제조업체이다. 이탈리아에는 세계적인 슈퍼카 제조사가 여러 곳이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곳이 람보르기니와 페라리이다. 람보르기니와 페라리는 세기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다. 람보르기니 제 1의 사칙이 '페라리보다 빠른 자동차를 만들자'일 정도이니 말이다. 페라리의 엠블럼에 말이 들어간다면, 람보르기니의 엠블럼에는 황소가 들어간다. 지금부터 람보르기니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람보르기니의 정식명칭은 Automobili Lamborghini S.p.A.이지만 대부분 줄여서 람보르기니(Lamborghini)로 부른다. 람보르기니의 설립자인 '페루치오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는 원래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군사용품을 모아 트랙터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가 세운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트라토리(Ferruccio Lamborghini Trattori)는 이탈리아 최대 규모의 농업기계 제조회사가 되었다. 페루치오의 트랙터는 '절대 고장이 나지 않는' 특징이 있었다. 그는 트랙터 외에도 에어컨이나 가스히터 등을 개발했다. 큰 돈을 모은 페루치오는 마세라티, 알파 로미오, 벤츠 등을 몰며 자동차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특히 페라리를 좋아해서 페라리의 슈퍼카를 몇 대나 소유했다. 하지만 페라리는 특유의 소음과 잦은 클러치 결함으로 인해 고객들의 불만이 있었다. 페루치오는 자신이 소유한 페라리 250GT가 자꾸 고장이 나자, 직접 분해해서 고장의 이유를 찾기로 했다. 당시 페라리 250GT에는 페루치오의 트랙터와 같은 클러치가 장착되어 있었다. 페루치오는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페라리의 창업자인 엔초 페라리와 토론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당시 페라리는 포뮬라원에서 연승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엔초 페라리의 자만심은 매우 높았다. 엔초 페라리는 페루치오가 자신과 토론할 만한 급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해 페루치오를 무시했다. 이에 자극을 받은 페루치오는 직접 스포츠카를 제작하기로 결심한다. 페루치오는 1962년 당시에 '마세라티'나 '알파 로메오' 등에서 활약하던 차동차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을 고용해 우수한 성능의 엔진을 개발했다. 이후 1963년에 페루치오는 이탈리아 볼로냐에 자동차 공장을 설립했다. 다음 해에 람보르기니는 첫 모델인 람보르기니 350GT를 생산했다. 사실 350GT보다 먼저 만들어진 모델이 있었는데, 바로 350GTV였다. 하지만 350GTV는 토리노모터쇼에 맞춰 제작되었으나, 엔진이 제때 만들어지지 않았다. 결국 토리노모터쇼에는 엔진이 없는 350GTV이 출품되었다. 언론의 호평을 받았으나 이러한 상황 자체가 페루치오는 마음에 들지 않았고, 결국 1년 후에 새로운 모델인 350GT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350GT는 그 당시 페라리에서 판매하고 있던 많은 차량들보다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이 모델은 2년 동안 120대를 판매하기도 했다. 2년 뒤, 람보르기니는 새로운 모델을 출시했는데 바로 람보르기니 미우라(Miura)였다. 제네바모터쇼에서 발표된 이 제품은 시속 280km까지 달릴 수 있었기 때문에 당시 세계 최고속도의 스포츠카가 되었다. 이 기록은 8년 뒤, 1974년 페루치오가 개발한 람보르기니 카운타크(Countach)가 깼다. 카운타크는 최고 시속이 300km에 이르는 엄청난 자동차였다. 하지만 이러한 기록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경제불황이 심해지면서 람보르기니는 경영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결국 자동차사업에 흥미를 잃은 페루치오는 1972년, 1974년에 걸쳐 람보르기니를 매각했다. 람보르기니는 스위스의 사업가인 조르주 앙리 로세티와 장 끌로드 밈란을 거쳐 크라이슬러에 인수되었다가, 마침내 1998년에 폭스바겐 그룹의 아우디 산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람보르기니를 매각한 후, 자신의 이름을 딴 포도농장을 운영하면서 살았다. 

람보르기니의 엠블럼은 황소 모양인데, 이는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의 별자리가 황소자리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덕분에 람보르기니의 대표 모델들은 모두 투우용 칼이나 투우사의 이름 등 투우와 관련된 모델명을 가지고 있다. 람보르기니의 차량은 모두 미드십 엔진 구조(MR)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트렁크가 전부 앞에 있다. 람보르기니의 대표적인 모델로는 미우라, 카운타크, 디아블로(Diablo), 무르시엘라고(Murcielago), 가야르도(Gallardo), 쿤타치(Countach), 한정판이었던 레벤톤(Reventon) 등이 있으며 이 모델을은 현재 전부 단종되었다. 현재는 아벤타도르(Aventador)와 우라칸(Huracan)을 생산하고 있다.

럭셔리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의 대표 격인 메르세데스 벤츠는 세단, 컨버터블, 스포츠카, 쿠페 등을 제조하는 독일의 회사이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이름은 스페인어로 '우아함'을 뜻하는 메르세데스에서 따왔다. 세계 최초의 디젤 자동차를 개발한 메르세데스 벤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첫번째 기원은 1883년 칼 벤츠가 설립한 벤츠 앤 시에라는 세계 최초의 자동차 공장이다. 칼 벤츠는 최초의 휘발유엔진을 1879년 개발하고, 1883년 10월 독일 만하임에 공장을 설립했다. 1886년에 벤츠는 최초의 삼륜자동차를 개발했다. 이 자동차는 세계 최초로 '자동차'라는 이름으로 특허를 획득했고, 특허를 받은 자동차라는 의미의 '페이턴트 모터바겐'이라 이름 지어졌다. 벤츠 엔 시에는 1900년까지 매년 600대의 자동차를 생산했는데, 이 중에는 앞바퀴를 여러 각도로 움직일 수 있는 빅토리아도 포함되어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또다른 기원은 '다임러-모튼-게샬프트'이다. 이 회사는 줄여서 DMG라고 한다. DMG는 1902년에 경량차 메르세데스를 선보이는데, 메르세데스는 빠른 속도와 안전성을 지녀서 큰 인기를 얻었다. 제 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수년동안 경쟁관계였던 DMG와 벤츠 앤 시에가 연합하게 되었다. 두 회사는 디자인, 광고, 영업전략, 기술 등을 서로 협조하기로 하고 메르세데스-벤츠 AG를 설립하여 마케팅활동을 담당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MG와 벤츠 앤 시에는 경제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고, 결국 둘은 합병하여 다임러-벤츠AG가 된다. 이 다임러-벤츠 AG가 오늘날의 메르세데스-벤츠인 것이다. 

합병 이후 다임러 벤츠 AG는 최초의 모델을 선보였는데, 이 때 부터 모든 모델에 '메르세데스 벤츠'라는 이름을 붙였다. 또한 엠블럼은 두 회사가 합병한 것을 표현하기 위해 다임러 사의 세 꼭지 별을 벤츠의 월계관로고가 둘러싸는 디자인을 사용했다. 이 디자인이 모태가 되어 현재 원 안의 세꼭지 별 모양의 앰블럼이 탄생하게 된다. 

1928년, 메르세데스 벤츠는 메르세데스 SSK를 첫 생산했다. 250마력의 직력 6기통짜리 엔진과 4단 변속기를 장착한 이 모델은 시속 190km까지 낼 수 있는 성능을 지녔다. 그 다음해에는 2만km를 달리는 내내 한번도 고장이 나지 않을 정도의 뛰어난 내구성을 가진 뉘르부르크 모델을 선보였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이후 세계 최초로 디젤 엔진을 장착한 승용차를 개발했다. 이름을 '메르세데스 벤츠 260D'로 정한 디젤 자동차는 1936년부터 1940년까지 2000대 가량 생산되었다. 가솔린 엔진에 비해 무겁고 속도가 느린 대신, 연료비가 적게 들고 오래 달릴 수 있었기 때문에 택시 등에 주로 사용되었다. 1930년대의 메르세데스 벤츠는 디젤 자동차 외에도 '리무진' 차량에 주목했다. 국가 원수나 고위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제작한 리무진은 독일의 빌헬름 2세나 독일 육군 원수였던 파울 폰 힌데부르크의 애정을 받았다. 제 2차 세계대전 때, 대부분의 독일 자동차 회사가 전쟁관련 물품을 생산했던 것처럼 벤츠 또한 군사장비나 비행기 모터 등을 생산했다. 1946년 종전 이후, 메르세데스 벤츠는 자동차 생산을 재게하였고, 그 다음 해에 '메르세데스 벤츠 300SL'을 출시했다. 자동차 역사 상, 불후의 명작으로 인정받는 메르세데스 벤츠 300SL은 경주용 자동차를 기본으로 제작되었으며, 6기통 2996cc의 215마력의 엔진을 장착했다. 최고속도가 무려 250km인 이 제품은 1954년부터 63년까지 3000대가 넘게 생산되었고, 뒤 이어 출시된 메르세데스 벤츠 190SL과 함께 현재의 메르세데스 벤츠 SL의 기원이 되었다. 1959년에는 BMW와의 합병이 추진되기도 했지만 무산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1960년대의 벤츠는 오늘날 메르세데스 벤츠의 상징이 된 라디에이터 그릴을 쓰기 시작했다. 또한 1970년대 부터 모델명에 엔진 배기량에 따른 숫자를 첨부했다. 메르세데스 벤츠 C클래스의 원조읜 190시리즈는 미국 시장을 겨냥하여 1982년에 발표되었는데, 초기에는 성과를 얻지 못했다. 후에 190시리즈에 6기통 엔진과 자동 변속기가 추가되었고, 그제서야 190시리즈는 인기를 얻었다. 190시리즈는 그동한 중대형 고급 차량에 집중하던 벤츠의 소형모델이었다. 190시리즈의 성공은 메르세데스 벤츠의 시장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2년, 메르세데스 벤츠는 베르너 니퍼 전 회장의 지휘 아래 S클래스를 출시했다. 하지만 다음 해, 매출 부진과 인건비 상승으로 벤츠는 변화를 생각하게 된다. 특히 적자였던 포커 사를 인수하며 약 11억 마르크에 가까운 손실을 입었기에, 변화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덕분에 메르세데스 벤츠는 여러 자동차 회사 중 가장 먼저 대중화된 자동차를 개발했고, 현지 생산을 시작했다. 1993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선보였던 소형컨셉카인 '비전 A93'이 변화의 시작을 알렸다. 1997년에는 메르세데스 벤츠 A시리즈가 출시되어 대중화를 더욱 가속시켰다. 1998년에는 미국의 자동차회사인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을 인수하여 '다임러-클라이슬러'를 결성했다. 크라이슬러 인수 이후, 다임러-크라이슬러는 '마이바흐' 브랜드를 다시 부활시킨다. 마이바흐는 초호화 수제 자동차 브랜드로, 세계 3대 명차 중에 속하기도 한다. 2003년의 메르세데스 벤츠는 영국의 포뮬러 원 팀인 맥라렌과 함께 '메르세데스 벤츠 SLR 맥라렌' 스포츠카를 출시했다. 2007년 크라이슬러를 매각한 메르세데스 벤츠는 사명을 다임러 AG로 변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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