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복(Reebok)은 나이키, 아디다스 등과 같은 타 브랜드와는 달리 전 육상선수가 만든 스포츠 브랜드이다. 영국을 넘어 유럽 전역, 미국에서까지 사랑받은 리복은 2006년에 아디다스에 인수되었다. 리복의 모기업이 아디다스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현재 리복은 미국 회사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에 리복이 처음 시작된 곳이 영국인 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지금부터 이러한 리복에 대해 샅샅이 파헤쳐보기로 한다.



리복은 1895년 영국 런던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리복의 창시자는 조셉 윌리엄 포스터로, 그는 영국의 장거리 육상선수였다. 조셉의 할아버지인 사무엘 포스터는 영국 노팅햄샤이어에서 작은 신발가게를 운영했는데, 조셉은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조셉이 처음 개발한 운동화는 스파이크 러닝화였다. 사무엘 포스터가 개발한 스파이크가 달린 크리켓화를 본 조셉 윌리엄 포스터는 스파이크를 러닝화에 접목시키면 좀 더 접지력이 좋은 운동화가 탄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할아버지의 크리켓화를 경량화시켜 새로운 러닝화인 '포스터 러닝 펌프'를 만들어냈고, 이 운동화는 육상선수들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실제로 이 운동화는 그 당시에 있었던 다른 러닝화보다 접지력이 훨씬 우수했다. 포스터 러닝 펌프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나자 조셉 포스터는 1895년 'J.W.포스터 앤 선스'라는 러닝화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J.W.포스터 앤 선스는 러닝화 외에 다른 운동화에도 스파이크 기술을 접목시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1901년에 조셉 포스터는 발 사이즈를 측정할 수 있는 도표를 개발하여 선수들에게 맞춤형 운동화를 제작해주었다. 이러한 J.W.포스터 앤 선스의 운동화는 운동선수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그 당시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사용하는 신발로 자리를 잡게 된다. 여러 선수들 중 특히 J.W.포스터 앤 선스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건 바로 해롤드 아브라함과 에릭 린델이었다. 영화 '불의 전차'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한 두 선수는 스파이크 운동화를 신고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덕분에 J.W.포스터 앤 선스는 유럽시장에서 유명한 브랜드로 성장하게 된다. 

J.W.포스터 앤 선스는 그 후 1958년, 회사이름을 리복으로 변경한다. 리복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빠른 동물로 알려진 영양류의 이름을 땄으며, 가장 빠른 운동화를 생산한다는 이미지를 위한 시도였다. 리복은 1979년, 시카고 국제 박람회에서 북미 계약권을 판매함으로써 본격적인 미국 진출에 나섰다. 이 때, 리복의 북미계약권을 따낸 폴 파이어먼은 현재 리복의 본사가 있는 메사추세츠 주에 리복-USA를 만들었다. 리복이 미국에 진출했던 시기에 미국에서는 조깅 붐이 일어났다. 따라서 조깅화 또한 대유행이었으며, 이 때 출시된 리복의 러닝화는 타 브랜드보다 비싼 금액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렸다. 그 이유는 리복의 '러닝화 전문 브랜드'라는 이미지 덕분이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에 리복은 여성 전용 에어로빅화 제작에 집중한다. 미국 영화배우였던 제인 폰다가 에어로빅이라는 새로운 운동을 소개하자, 미국에서는 에어로빅 붐이 일어났다. 에어로빅의 특성 상, 무거운 운동화보다는 가벼운 운동화가 필요했고 리복은 이에 부합하는 운동화를 만들었다. 나이키나 아디다스 등 리복의 경쟁사들은 그 당시 여성들의 니즈를 무시했던 반면, 리복은 그에 대응하면서 큰 성과를 얻게 되었다. 덕분에 리복은 기존의 '러닝화'이미지를 탈피하고 여성용 운동화의 선두주자가 된다. 1987년, 마침내 리복은 나이키와 아디다스를 누르고 최고 매출을 달성해, 최정상급 브랜드로 성장했다. 

리복의 이러한 미국시장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리복-USA의 폴 파이어먼은 1984년에 영국 본사를 인수했다. 그 다음해 폴 파이어먼은 리복-USA의 이름을 리복-인터내셔널로 변경하고 뉴욕증권시장에 상장한다. 리복의 성장세는 멈추지 않았고, 1986년에는 더 락포트 컴퍼니를 인수해 사업영역을 더욱 확대했다. 1989년, 리복은 '스텝 리복'이라는 운동 프로그램을 개발해 미국 전역에서 시행했다. 이에 맞춰 리복은 운동화의 공기주입 방식인 펌프 기술을 개발했고, 펌프 기술이 적용된 에어로빅 운동화 등의 다양한 제품군이 출시되었다. 이 제품들이 큰 사랑을 받으면서 리복의 정상급 브랜드 이미지는 계속되었다. 리복은 이 흐름을 이어서 170여 국가에 다양한 제품들을 출시했고, 리복의 인기는 9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리복은 90년대에 들어서 영역 확대를 위해 새로운 제품군을 출시했다. 미식축구, 야구, 축구 등의 새로운 제품군은 리복의 인기를 더욱 높였다. 특히 NBA 스타였던 샤킬 오닐과 함께 출시한 '샤크 컬렉션'이 큰 사랑을 받았다. 리복은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90년대 후반에는 더욱 많은 스포츠스타와의 협업을 시도했다. 

2000년대에는 지금도 유행 중인 '코어단련운동'의 일종인 '리복 코어 트레이닝'프로그램을 시행했다. 또한 캐쥬얼시장으로도 영역을 확대해, 제이지나 50센트와 같은 힙합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했다. 하지만 90년대부터 에어로빅 붐이 사그라들면서 리복 또한 하락세를 걷게 되었다. 특히 경쟁사인 나이키의 선전으로 리복의 점유율은 크게 떨어졌고, 이에 반등을 노리기 위해 스타 마케팅을 과도하게 시도했던 리복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리복은 2006년 아디다스에 인수되면서 다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리복은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을 발굴하고 여성 소비자층의 외면하지 않았다는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한 회사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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