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엘은 독일의 유명 제약 및 화학 회사이다. 흔히 아스피린을 만든 회사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바이엘 사에서 근무하던 펠릭스 호프만이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해열진통제인 아스피린을 개발했고, 덕분에 바이엘은 세계적인 제약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 지금부터 바이엘 사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바이엘이란 기업명은 설립자인 프리드리히 바이엘(Friedrich Bayer)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염료 세일즈맨이었던 프리드리히 바이엘은 1863년에 염료 장인인 요한 프리드리히 베스코트(Johann Friedrich Weskott)와 함께 염료기업을 세웠다. 염료기업의 이름 또한 프리드리히 바이엘(Friedrich Bayer & Co)였다. 두 설립자가 회사를 운영하는 동안에는 바이엘은 그저 화학염료를 생산하는 기업일 뿐이었다. 1880년에 프리드리히 바이엘이 사망하고, 1년 뒤에 요한 베스코트도 사망했다. 프리드리히 바이엘의 사위였던 카를 룸프가 회사를 이어받았는데, 그는 회사 이름을 '파르벤 파브리켄 포어말스 프리드리히 바이엘(Farbenfabriken vorm. Friedr. Bayer & Co)'로 바꾸고, 회사를 확장했다. 카를 룸프는 회사를 연합 주식회사로 변화시켰는데, 이 덕분에 바이엘 사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카를 룸프는 회사의 성장을 위해서는 젊은 화학자들이 육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이엘 사는 젊은 인재들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페나세틴'이라는 해열제를 개발한 카를 뒤스베르트(Carl Duisberg)였다. 페나세틴은 아세트페네티딘이나 p-아세트아미노페네톨이라고도 하는데, 발열성 질환이나 감기, 두통, 류머티즘, 생리통 등에 사용할 수 있는 진통제였다. 하지만 극약 성분이기 때문에 신독성 등을 야기할 수 있었다. 어쨌든 페나세틴은 당시 여러모로 사용이 가능한 진통제였기 때문에 많이 쓰일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파르벤 파브리켄 포어말스 프리드리히 바이엘 사는 의약품 사업에도 진출하게 되었다. 이후 1897년에는 바이엘 사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펠릭스 호프만(Felix Hoffmann)이 아세틸살리실산을 개발했다. 원래 살리실산은 그 전 부터 해열과 진통에 효과적인 약제로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특유의 쓴 맛과 여러 부작용 때문에 많은 화학자들은 살리실산을 좀 더 쉽게 복용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펠릭스 호프만 박사는 살리실산은 아세틸화 시켜서 '아세틸살리실산'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아스피린(Aspirin)'이다. 파르벤 파브리켄 포어말스 프리드리히 바이엘은 아스피린 덕분에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바이엘 사는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1차 대전이 시작되고, 해외 수출에 의존도가 높았던 바이엘 사는 판매량이 급격하게 감소하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20년대에 들어서 바이엘 사는 타 기업과의 합병을 추진했다. 바스프(BASF), 훽스트(Heoechst) 등 6개의 기업이 합병하여 유럽 최대의 화학회사인 '이게 파르벤(I.G.Farbeni-industrie AG.)'을 설립했다. 이게 파르벤은 2차대전 당시, 나치를 후원하고 아우슈비츠에서 유태인들을 학살하는데 사용된 가스를 제조했다. 나치 전쟁 범죄에 동참하면서 이게 파르벤은 엄청난 이득을 취했다. 하지만 2차 대전이 끝나고, 연합군은 독일계 회사였던 이게 파르벤을 12개사로 분할 및 해체시켰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파르벤 파브리켄 바이엘(Farbenfabriken Bayer AG)'이었다. 바이엘 사는 독립된 이후 석유화학 산업 쪽에 집중했다. 이후 사업이 안정적으로 변하자, 바이엘 사는 석유화학 산업 외에도 심혈관 질환 관련 약품이나 피부 향균 등에 관한 제품을 개발했다. 1972년에 현재의 회사명인 바이엘(Bayer AG)로 이름을 변경했다. 또한 이 당시, 미국의 제약회사였던 Cutter Laboratories와 Miles Laboratories를 인수해서 미국 제약시장에서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 중 Cutter Laboratories는 바이엘 사의 자회사인 커터 바이올로지컬(Cutter biological)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여기서 1980년대 중반에 개발한 약품이 바로 혈우병 환자들을 위한 혈액응고제인 팩터VIII 농축액이었다. 하지만 이 제품이 에이즈 바이러스 검사를 거치지 않고 사용되어 문제가 되면서, 결국 바이엘 사는 혈우병 환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해야 했다. 바이엘 사는 여러 난관 속에서도 성장해서 1990년대에 들어서는 아스피린 공장을 동독 비터필드에 설립했다. 또한 토론토의 Polysar Rubber Co.와 합병을 해서 세계 최대의 고무 원료 공급회사가 되었다. 2000년대에는 화학회사였던 Lyondell Chemical Co.를 인수해서 세계 최대 폴리우레탄 원료 생산업체가 되었다. 2012년에는 기업 지속가능성 부문에서 세계 3대 화학기업이자 독일 최고의 화학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바이엘 사는 현재 세계 150여 개국에 350여 개의 자회사를 두고 있다. 사업분야는 크게 건강, 농업, 고분자 재료 분야로 구성되며, 인체 의약품이나 동물 의약품, 식물 보호제, 가정용 살충제, 폴리우레탄, 폴리카보네이트, 도금 및 접착제 등을 생산하고 있다. 물론 가장 유명한 제품은 '아스피린'이다. 바이엘 사는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레버쿠젠을 연고로 하는 축구 클럽을 1904년에 창단하기도 했다. '바이엘 04 레버쿠젠'이란 이 축구클럽은 독일 분데스리가 1부에 소속된 프로축구클럽으로 오랜 역사를 지녔으나, 한번도 분데스리가에서 우승을 하지 못했다. 한국 선수로는 차범근이 1983년부터 89년까지 활약했으며, 그 외에 손흥민, 류승우 같은 선수가 이 클럽에 소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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