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는 스웨덴의 자동차 브랜드이다. 1926년 스웨덴의 어느 레스토랑에서 경제학자 겸 볼베어링 회사 직원이었던 아서 가브리엘손과 볼베어링회사 엔지니어였던 구스타프 라르손이 냅킨의 뒷면에 자동차를 디자인하고 구상하면서 볼보를 탄생시켰다. 볼보는 스웨덴 최초의 현대식 자동차 공장을 세웠고 그 후 스웨덴의 국민차를 만들어냈다. 볼보는 무엇보다 '안전'을 중요시하는 회사로, 인간 중심의 디자인을 구상해 자동차 안전 기술의 표본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볼보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볼보는 1927년에 설립된 회사이다. 당시 최대 볼베어링 회사였던 SKF의 직원 두 명이 SKF의 투자를 받아 세운 회사였다. 그 두 직원은 아서 가브리엘손과 구스타프 라르손이었는데, 그들은 그 당시 스웨덴에서 인기를 얻었던 미국 자동차들이 스칸디나비아의 기후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북유럽의 춥고 거친 날씨를 견딜 수 있는 자동차를 제작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둘은 1924년에 처음으로 자동차 구상에 들어갔다. 그들은 마침내 1926년 자동차의 뼈대를 제작했다. 하지만 투자금이 부족했던 아서와 구스타프는 테스트카를 먼저 제작하기로 한다. 그들이 처음 제작했던 OV4는 SKF의 경영진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그들은 아서와 구스타프의 프로젝트에 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아서와 구스타프는 SKF의 자금을 바탕으로 스웨덴 예테보리에 스웨덴 최최의 현대식 자동차 공장을 세웠다. 그리고 그들은 '나는 구른다'는 의미의 "볼보"라는 회사를 설립한다. 볼보는 첫 번째 자동차인 야곱을 생산하면서 SKF에 대한 감사의 의미를 담아 엠블렘을 제작했다. 회전하는 베어링을 형상화한 이 엠블렘은 화살표 문양이 달린 동그라미 모양이었고, 현재까지 볼보는 이 엠블렘을 사용하고 있다. 볼보는 그 무엇보다 '안전'을 중시했다. 스웨덴은 미국이나 다른 유럽지역에 비해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계절적 단점과 낮은 도로포장률 때문에 도로사정이 좋지 않았다. 이에 볼보는 안전성을 중시한 고가의 자동차 '야곱'을 첫 생산했지만, 워낙 고가다 보니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1928년, 볼보는 첫 6기통 모델인 PV651을 출시했다. 이 모델은 기존의 야곱보다 엔진출력이 강화되어 호평을 받았다. 볼보는 또한 트럭 제품군을 새로 출시해 사업 영역을 확대했는데, 이것이 인기를 끌면서 1929년, 처음 흑자로 전환하였다. 1939년,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볼보 또한 다른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전시용 차량을 제조하게 되었다. 하지만 볼보는 전쟁 후를 대비해 소형차 개발을 남몰래 준비했다. 덕분에 1944년에 출시된 볼보의 소형차 모델 PV444는 큰 인기를 누렸다. 볼보는 세계 최초로 강화유리를 자동차에 접목시켜 안전성을 더욱 높였고, 이는 전쟁 동안 '안전'을 중요시하게 된 스웨덴 국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었다. 이 결과, PV444는 스웨덴 국민차로 등극하게 되었다. 1946년에 볼보는 새롭게 농업용 트랙터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 후 볼보는 건설 기계 제조 업체였던 볼린더 뭉크텔을 인수하고 본격적으로 건설기계 제조분야로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볼보는 1955년에 미국시장에 진출했다. 1956년에 출시된 볼보의 '볼보 아마존'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끌었는데, 특히나 '고장 없는 차'로 유명했다. 볼보는 1959년 세계 최초로 3점식 안전벨트를 자동차에 기본사양으로 장착하는데, 이는 볼보가 '안전한 자동차'를 만든다는 브랜드 이미지를 더욱 확고하게 했다. 1960년, 볼보도 드디어 스포츠카를 제작했는데 바로 P1800이었다. P1800은 고풍적이면서도 스포티한 디자인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후에도 볼보는 안전을 강조하는 차량을 지속적으로 개발했다. 볼보 144나 볼보 164 등은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볼보의 이미지를 '안전한 차'로 공식화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 볼보는 페어 길렌하마르를 새로운 CEO로 맞이했다. 볼보 자동차들이 대부분 안전성을 강조한 중대형 차량이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볼보의 소형차 생산을 요구했다. 페어 길렌하마르는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춰 소형차 제작 전문이었던 네덜란드의 DAF를 1972년에 인수했다. 볼보의 안전한 차량은 미국의 교통안전공사가 벤치마킹할 정도였고, 덕분에 1976년 볼보는 '안전'에 있어서 최고의 브랜드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1979년 볼보는 프랑스의 르노자동차의 출자를 받아 승용차 부문을 독립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1981년 이후 볼보는 유럽 자동차 브랜드 중, 미국에 가장 많이 수출하는 브랜드로 발돋움했다. 볼보는 지주회사체제를 1982년에 시작했다. 회사 이름을 볼보 그룹으로 변경하고 그 아래 자회사로 볼보자동차, 볼보트럭, 볼보버스, 볼보펜타 등을 두었다. 볼보의 성공은 계속되었다. 1990년대에 볼보는 혁신적인 새로운 모델을 제작했다. 1991년 출시된 볼보 850은 전륜구동 방식으로 기존의 후륜구동의 차량들과 차별화를 두었다. 또한 5기통 엔진을 장착했기 때문에, 기존의 6기통 차량보다 작으면서 연비가 좋았다. 덕분에 볼보 850은 큰 인기를 끌었다. 볼보는 그 후 소형차 라인의 생산에도 무게를 두었다. 1995년에는 S40과 V40을 출시했는데, S는 세단을 의미하고 V는 다용성을 의미한다. 작은 소형차를 개발했음에도 소비자들에게 볼보는 딱딱하고 커다란 자동차의 이미지가 강했다. 이에 1998년 볼보는 대형세단 S80을 출시했다. S80은 그동안의 볼보 차량과는 달리 유선형 디자인과 다양한 컬러를 채택해 기존의 딱딱했던 볼보의 자동차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1999년 포드사가 볼보의 승용차부문을 인수했고, 볼보 승용차(Volvo Car Corp.)는 볼보그룹의 '볼보'라는 이름을 공유하지만 소유주가 다른 회사가 되었다. 이러한 바탕에는 당시 볼보 그룹의 회장이었던 레이프 요한손의 결정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 대형 승용차 시장에서 10개 정도의 회사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따라서 당시 세계 23위였던 볼보 자동차는 1순위 매각대상이었다. 포드 사와 볼보 사는 볼보 트레이트마크 홀딩 AB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브랜드 네임과 관련된 문제들을 관리하기로 했다. 볼보 그룹은 볼보 자동차를 매각한 이후, 미국의 맥 트럭과 르노 트럭을 인수했다. 이를 통해 볼보는 세계 2위이자 유럽 최대의 트럭 회사가 되었다. 또한 삼성중공업의 건설기계분야와 닛산 디젤, 중국의 링공까지 인수하면서 트럭과 건설중장비 부분에서 세계 최고의 회사로 성장하게 되었다. 한편, 포드 사가 인수한 볼보 자동차는 2000년에 스포티한 컨셉의 중형 세단 S60을 선보였다. 볼보 자동차는 자신들의 '안전'이미지를 버리지 않고, 계속 안전장치를 개발했다.
2004년, 볼보 자동차는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BLIS 기술을 개발했다. BLIS 기술은 사각지대에 다른 차량이 감지될 경우, 알람 램프에 불이 들어오면서 다른 차량의 존재를 알려주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유럽의 여성 운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볼보 자동차는 그 이후로도 꾸준히 첨단 안전 시스템을 개발했다. 하지만 2007년부터 경기 불황이 심화되면서 포드 사는 볼보자동차를 중국 회사인 질리에 매각했다. 이후에도 볼보는 꾸준히 인간 중심의 디자인 철학을 통한 자동차를 개발했다. 보행자 에어백이나 자전거 감지 시스템 등 다양한 안전 관련 기술들을 개발한 볼보자동차는 수많은 자동차 브랜드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안전'전문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