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게임회사이다. 요즘은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핸드폰 증강현실게임 '포켓몬고'로 또 한 번 정상에 올랐다. 닌텐도는 2016년 기준 종업원수는 5,101명 뿐이지만 세계적인 회사로 인정받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소니, 세가와 더불어 세계 주요 게임 회사 중 하나인 닌텐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닌텐도는 1889년 교토에 살던 공예가 출신의 야마우치 후사지로가 세웠다. 야마우치 후사지로는 '닌텐도 곳파이'라는 화투 제조 업체를 창업했다. 닌텐도의 이름은  ‘운을 하늘에 맡긴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화투게임과 연관이 있다. ‘하나후다’라고 불리는 일본의 전통 화투를 생산하던 닌텐도 곳파이는 특이한 점이 있었다. 바로 화투패의 앞, 뒷면에 석회가루를 넣은 것이었다. 석회가루를 넣은 화투패는 바닥에 내려칠 때 '착'하는 경쾌한 소리가 났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 이 화투는 현재까지도 판매하고 있다. 

1949년에 야마우치 후사지로가 사망한 뒤, 가업은 손자인 야마우치 히로시가 물려받았다. 닌텐도는 1902년 일본 최초로 서양의 트럼프 카드를 제작했는데, 야마우치 히로시가 사장으로 취임한 후, 1953년에 세계 최초로 플라스틱 재질의 트럼프를 생산했다. 히로시는 이에 그치지 않고, 1959년 디즈니의 캐릭터가 들어간 트럼프를 출시하였다. 미국 디즈니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이 트럼프는 전세계적으로 대대적인 인기를 모았다. 덕분에 히로시는 일본을 넘어 세계 최고의 카드 생산사를 목표로 하기 시작했다. 그는 견학차 갔었던 세계 최대의 카드회사 US Playing Card가 상상했던 것만큼 큰 회사가 아님에 충격을 받고, 카드만으로는 모자라다고 생각했다. 

그에 닌텐도는 1962년 주식을 상장하고, 1963년에는 현재의 ‘닌텐도 주식회사’로 이름을 변경했다. 이후 사업다각화를 시도하여 운수업, 러브호텔, 인스턴트 식품산업 등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야마우치 히로시는 그제서야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고 아날로그 장난감 개발에 몰두한다. 닌텐도는 1966년에 만능팔 장난감인 울트라 핸드 출시와 함께 장난감 산업에 뛰어들었다. 야구공 피칭 머신인 ‘울트라 머신’, 잠망경같은 '울트라 스코프' 등의 울트라 시리즈와 ‘러브 테스터’ ‘코우센주’ 시리즈 같은 장난감이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업계에서 군림하고 있는 대기업들을 이길 수 었다고 판단한 닌텐도는 전자 완구 개발에 뛰어들게 된다. 닌텐도는 1977년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인 Color TV 6을 발매했다. 이것이 닌텐도의 전자완구의 시작이었다. 닌텐도는 1980년 처음으로 뉴욕 주에 현지법인 닌텐도오브아메리카를 설립했고, 같은 해 휴대용 게임기인 게임&와치를 출시했다. 1980년대 초, 북미게임업계는 아타리쇼크 때문에 가정용 게임기 업계 전체가 큰 손실을 입은 상태였다. 닌텐도는 이런 상황을 고려해, 게임기의 하드웨어적인 부분보다는 소프트웨어를 중시한 제품들을 출시했다. 1981년 비디오 게임 동키콩이 출시되어 판매에 성공을 거두었고, 1983년에는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인 패밀리 컴퓨터(약칭 패미컴)를 발매했다. 1985년에는 그 유명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출시되어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닌텐도의 이러한 과감한 전략은 일본 뿐 아니라 북미시장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닌텐도 덕분에 미국의 게임시장이 다시 살아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닌텐도는 여세를 몰아 1989년에는 닌텐도의 2번째 휴대용 게임기인 게임보이를 출시했다. 워낙 튼튼하게 만들어진 게임보이는 반쯤 부서진 상태에서도 작동하기로 유명했다. 게임보이에는 큰 인기를 모았던 슈퍼마리오 시리즈와 테트리스 등의 게임콘텐츠가 탑재되어 인기를 더욱 높였다. 같은 해, 닌텐도는 패미컴의 후계이자 16비트 게임기인 슈퍼패미컴을 출시했다. 슈퍼패미컴은 대부분의 RPG 콘텐츠가 몰렸기 때문에 경쟁사들을 제치고 일본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슈퍼 패미컴의 성공에 뒤이어 가상현실 컨셉의 버추얼 보이를 출시했던 닌텐도는 첫 실패를 맛보게 된다. 화면을 사용자만 볼 수 있고 화면이 빨간색밖에 보이지 않았던 점 등의 이유로 버추얼 보이는 저조한 판매실적을 올리고 사라졌다. 닌텐도는 그 후, 1996년 가정용 게임기 ‘닌텐도 64’를 출시했다. 당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세가의 세가새턴 등의 32비트 게임기들이 인기를 얻을 때였다. 닌텐도는 시장탈환을 위해 32비트보다 성능이 우수한 64비트의 CPU를 탑재한 닌텐도 64를 출시했지만 이미 소니가 장악한 게임시장을 다시 탈환하기는 어려웠다. 특히나 생산단가가 높은 ROM을 계속 고집했던 것도 실패요인으로 지목된다. 그 후, 다시 한 번 소니의 아성에 맞서 '게임큐브'를 출시했다. ROM이 아닌 DVD를 채용해 만든 게임큐브는 좋은 게임들이 많이 출시되었다. 하지만 이미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가 게임시장을 또 한 번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닌텐도는 또 한 번 씁쓸한 패배감을 맛보게 되었다. 닌텐도는 가정용 게임기에서는 소니에게 계속 밀렸지만, 휴대용 게임기 시장만은 단연 선두였다. 게임보이가 계속 인기를 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닌텐도가 90년대 말, 게임보이의 소프트웨어인 '포켓몬스터 적 · 녹'을 출시하면서 포켓몬스터가 시작되었다. 포켓몬스터 시리즈는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가져왔다. 

포켓몬스터 시리즈로 휴대용 게임시장에서 누구도 넘보기 어려운 위치를 장악한 닌텐도는 2004년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 DS’를 출시했다. 듀얼스크린과 터치스크린을 장착한 NDS는 전세계적으로 1억 5000만대가 넘게 판매되었다. 게임기 판매 성공이 어렵다는 한국시장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으니, NDS의 인기가 어느정도였는지 알 만하다. 닌텐도는 이 기세를 몰아서 2006년 가정용 게임기 위(Wii)를 출시했다. 체감형 게임기를 모토로 한 Wii는 모션센서를 장착한 것이 특징이었다. 피트니스에 초점을 둔 소프트웨어들을 출시한 닌텐도 Wii는 기존의 '게임기는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을 바꾸어놓았다. 닌텐도 Wii또한 NDS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는데, 총 기기 판매량이 1억이 넘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휴대용 게임기 산업이 침체되기 시작했다. 닌텐도는 이에 모바일 게임 시장에 진출했다. 닌텐도에서 출시한 슈퍼마리오 런과 포켓몬고는 전세계적으로 대인기를 끌었고, 닌텐도의 주가는 폭등했다. 계속 발전하는 닌텐도의 게임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매우 궁금하다.


소니가 발명한 많은 제품들 중에 단연 1위는 바로 플레이스테이션일 것이다. 워크맨이나 그 밖의 다른 제품들도 많은 인기를 얻었지만, 플레이스테이션은 전세계적으로 폭풍적인 반응을 얻은 제품이었다. 이러한 플레이스테이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비디오 게임기 시장의 왕좌는 닌텐도(Nintendo)사의 것이었다. 특히 1983년에 출시된 닌텐도 패밀리컴퓨터(Family Computer)와 1990년에 출시된 닌텐도 슈퍼 패미컴(Nintendo Super Famicom)은 비디오 게임기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닌텐도가 비디오시장을 장악하는 것을 도왔다. 당시 패미컴 및 슈퍼 패미컴과 같은 닌텐도 게임기는 롬 카트리지를 저장매체로 사용하고 있었다. 롬 카트리지는 게임기에 장착하기만 하면 간단히 실행이 가능했고, 데이터도 빨리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장점이었다. 하지만, 롬 카트리지는 저장 용량이 작았고 가격도 비싼데다가 대량 생산도 어려웠다. 

1980년대 말, 드디어 CD-ROM이 개발되어 보급되기 시작했다. CD-ROM은 700MB 가량의 대용량을 담을 수 있고 저렴하게 대량 생산이 가능한 것이 장점이었다. 1990년대, 닌텐도의 경쟁상대였던 세가(Sega)나 NEC는 이러한 CD-ROM을 이용해서 비디오 게임기를 출시했다. 하지만 닌텐도의 시장 점유율이 워낙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세가나 NEC가 시장의 판도를 바꾸기는 어려웠다. 물론 닌텐도도 CD-ROM을 이용한 게임기를 출시하기로 마음먹고 개발에 들어갔다. 1990년대 초에 닌텐도는 슈퍼 패미컴용 CD-ROM 확장 장치 출시를 계획했다. 이 장치의 개발은 전자제품시장을 주도하고 있던 소니(Sony)사가 함께 맡았다. 닌텐도와 소니가 합작해 개발하던 제품이 바로 플레이스테이션이었다. 하지만 개발 과정에서 닌텐도와 소니 사이의 주도권 다툼이 일어났고, 결국 장치의 개발은 무산되고 말았다. 합작이 무산된 후, 소니는 독자적인 비디오 게임기를 출시할 계획을 세운다. 

1993년에 소니는 비디오 게임기 전문회사인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를 하고 다음 해에  ‘플레이스테이션’을 출시했다. 1994년에 출시된 플레이스테이션은 개발이 중단되었던 닌텐도와의 합작 제품과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닌텐도와는 상관 없는 독자적인 기술의 게임기였다. 플레이스테이션의 가장 큰 특징은 CD-ROM을 저장 매체로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CD-ROM을 이용해 저장용량이 커진 덕분에 고품질의 영상과 음향기술을 사용할 수  있었고, 소프트웨어도 저렴하게 판매할 수 있었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환영 받았다. 또한 당시 전문가용 컴퓨터에 쓰이던 고성능 32비트 프로세서를 탑재해 경쟁사 제품들보다 높은 수준의 그래픽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특징이었다.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를 출시했을 때, 세가, 3DO, NEC 등도 CD-ROM 기반의 비디오 게임기를 내놓았다. 하지만 3D 그래픽 성능이나 마케팅 능력이 소니보다 뒤떨어졌고, 결국 판매율에 있어서 소니를 따라갈 수 없었다. 1996년에 닌텐도가 64비트 프로세서를 탑재한 닌텐도 64를 내놓았다. 하지만 닌텐도는 여전히 롬 카트리지 저장매체를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성능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스테이션을 따라갈 수 없었다. 덕분에 비디오 게임기 시장의 주도권은 닌텐도에서 소니로 넘어가게 되었다. 플레이스테이션은 모든 경쟁사를 누르고 비디오 게임 업계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플레이스테이션은 2004년까지 세계 시장에서 총 1억대를 판매하는 기록을 세웠다.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비디오 게임기 시장의 선두주자가 된 소니는 2000년에 들어서 후속 모델인 ‘플레이스테이션 2’를 출시했다. 플레이스테이션 2는 이전 모델보다 3D 그래픽 처리 능력을 강화함과 동시에, 그 당시 유행하던 DVD를 기본 저장 매체로 채택했다. 플레이스테이션 2는 플레이스테이션을 좋아하던 기존 소비자층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또한 별도의 DVD 플레이어 구매 없이 DVD 영화를 보고자 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어 역시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2012년까지 플레이스테이션 2는 세계적으로 약 1억 5천만대가 판매되었다. 거치형 비디오 게임기 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 소니는 이제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 진출하기로 마음먹는다. 2004년, 소니는 휴대용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PSP)’을 출시했다. PSP는 플레이스테이션2 수준의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는 고성능 프로세서를 탑재했으며, 1.8GB의 대용량을 담을 수 있는 전용 디스크가 들어있었다. 또한, 메모리카드를 꽂을 수 있는 슬롯을 탑재해 동영상이나 음악을 저장하고 감상할 수 있었다. PSP는 꽤 인기를 얻어, 2011년까지 7천만대를 판매하였다. 하지만 이는 경쟁기종이었던  ‘닌텐도 DS’의 판매량의 절반 수준이었다는 아쉬움이 있다. 

이후 소니는 2006년, ‘플레이스테이션3’를 출시했다. 플레이스테이션3는 플레이스테이션1의 CD-ROM, 플레이스테이션2의 DVD에 이은 블루레이(Blu-ray) 디스크를 채택한 제품이었다. 덕분에 플레이스테이션3는 HD급의 고품질 게임 및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인터넷 접속이 가능했고 대용량 하드디스크도 갖추는 등 다양한 면에서 업그레이드를 한 제품이었다. 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3는 개발 기간이 길고 본체 가격이 비싸졌음에도 불구하고 게임 성능 자체는 그 전에 나왔던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엑스박스(Xbox) 360과 큰 차이가 없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나온 닌텐도 위(Wii)가 독특한 조작 방법 덕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플레이스테이션 3는 이전 모델들과 같은 큰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이러한 상황때문에 비디오 게임기 시장은 소니, 닌텐도,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가 경합을 벌이는 구도로 바뀌게 되었다. 

플레이스테이션3의 판매실적이 다소 부진하자, 소니는 2013년에 후속 모델 ‘플레이스테이션4’를 출시했다. 플레이스테이션4는 AMD의 범용 프로세서와 그래픽 프로세서를 탑재해 게임 개발사들이 한층 쉽고 빠르게 게임을 개발할 수 있게 한 것이 특징이었다. 또한 8GB의 대용량 그래픽 메모리를 탑재해 경쟁 기기였던 엑스박스 원보다 뛰어난 품질의 3D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었다. 이러한 특징 말고도 플레이스테이션4는 SNS와 1인 방송 기능을 내장했다. 게임을 동영상으로 녹화하고, 이를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통해 전세계에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고가의 캡처보드를 구매하지 않아도 1인 게임 방송을 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린 것이다. 덕분에 플레이스테이션4는 전작의 부진을 만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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